isbn: 9788990062796
한국 근대사를 보면 참 답답하다. 엄중한 시기에 중, 러, 일의 이권에 끼이고, 국내 개혁의 압력을 대응하느라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국가의 힘이 약해지면 개인이 두드러진다. 망해가는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독립 운동지사들이 그런 예이다. 국가의 힘이 강하면 개인이 희미하다. 개화를 하면서 근대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 제국주의 일본, 가부장적인 가정의 환경에서 무정부주의로 길려진 가네코 후미코가 다른 예이다. 그녀가 현재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가네코 후미코, 박열 등 은 1920년대 영화 “마이너러티 리포트”에나 나올법한 혐의로 구속 되었다. 일본 천황 폭살 모의 혐의. 평소면 이런 혐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무리수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재판 중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박열과 옥중 결혼을 했다. 재판장의 계속된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아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신념을 지키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네코 후미코가 말했듯이 오늘 죽고, 내일 살기 위해서인가? 해방 후 박열이 전향을 했니 마니하여 말이 많은데, 가네코 후미코는 이런 논쟁에서 자유롭다. 만약 가네코가 박열과 같이 살아서 석방되었다면 그 후 행적이 궁금하다.
가네코 후미코는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조선에 묻혔다. 그 넓은 일본에서 그녀를 받아줄 땅이 없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관계를 보면 답답하다. 과거를 청산?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나, 과거 미친 한국 정부와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과거의 일본인들 때문에 진행이 안된다. 운요호 사건 후 100년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다. 만약 한국이 운좋게 근대화에 버금가는 다음 물결을 탄다면 이런 식의 일본은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다. 우리가 당한 이상으로 할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