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플레이 시간 600을 뚫어 버렸다. 제작사는 5월 말에 지원 종료를 선언했는데, 꾸준하게 하는 인간들이 많나 보다. 하…적벽까지라도 좀 만들어 주지. 삼국지 2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600 시간을 가능하게 하려면..
- 애들이 10세 이상이어야 함.
- 년 15일 휴가.
- 제작사가 깽판을 쳐도 이해할 수 있는 삼국지에 대한 애정.
- 코로나 19 + 델타 바이러스 + 오미크론 변이.
- 아무리 전쟁이 급해도 마누라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 갈 수 있는 대범함.
- 넓고 넓은 중국, 많고 많은 인재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끈기.
- 병력을 어떻게 이동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중국 지리 이해.
게임이 나름 역사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특히 각 세력간 외교를 정말 그럴 듯 하게 구현했다. 아니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어 더 현실적인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조조가 평정하기 전까지 중원이 완전 개판이었다. 걸핏하면 황건적 잔당이 들고 일어나, 유대, 포신, 유총 등 피래미급 군벌들이 걸핏하면 전쟁을 일으켜, 동탁은 낙양을 초토화하고 지 멋대로 헌제를 컨트롤 해…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는지 상상도 못하겠다. 후대에게 가슴 벅차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지옥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복이 왜 원소에게 기주를 바쳤는지 이해 할 수 있다. 누구나 명성이 자자한 원소에게 붙는다면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주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 수 있다 생각한다. 한복이 나중에 원소 때문에 기주를 떠났지만, 이를 미리 예측했던 인물은 소수였다.
조조가 관도 대전 후 그 많은 원소 포로를 다 처형했고, 서주를 공략하기 전에 근처를 초토화 했는지도 이해 가능하다. 곽가가 죽음을 무릅쓰고도 원담 잔당을 쫒아 오환까지 갔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몇 만명 포로까지 처형할 정도로 조조가 원소 세력을 두려워 했다. 원소 세력을 북방에 방치 했다면 나중에 분명 문제가 되었다.
원소가 6년 상을 겪어 명이 줄었다는 말도 있지만,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다른 역사를 보았을 것 이다.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관도대전 후 급격히 몰락한 인물이 아니다.
이런 미친 환경에서 기회가 있을 때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지, 실패는 패망, 죽음을 의미했다. 능력있고 냉정한 조조가 후대 비판을 받지만 그 시기에는 너무나 적절한 행동 이었다.
이에 비해 유비는 신념과 의리 하나로 나라를 만들었다. 익주를 얻기 전 까지 조조에게 수많은 패배를 겪으면서도 따르는 장수들이 배반하지 않고, 너무나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그 능력이 조조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유방 정도는 쉽게 뛰어넘는다. 역사상 조조와 비교하여 우위에 있을 인물이 몇 이나 있을까 싶다. 조조같은 인물과 맞서가며 비전 하나만 가지고 촉을 세웠다면 능력 하나는 끝내 준다.
제작사 개발 중단으로 관도 대전이 끝이지만, 계속 개발했다면 정말 가슴이 두근 거렸을 것이다. 조조가 관우 때문에 위나라 수도를 옮길 생각까지 했다. 이 때 과거 유방 통일 루트로 장안으로 군사를 내고, 오나라가 합비쪽으로 군사를 냈다면 위나라 영토가 많이 줄어 들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전란을 겪은 중원과 달리 한반도 만한 분지 익주에서 나오는 식량, 물자를 보급했다면, 제갈량에 입안한 삼국 정립 후 위 분할 통치가 거의 성공할 뻔 했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는데, 그 시기 관우와 오나라 관계가 정말 아쉽다. 손권은 조조를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왜 그리 형주에 집착했을까? 수성의 밝은 주인이라는데 아버지, 형이 보여준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유까지 일찍 죽었으니…촉 멸망까지 위나라에 전혀 위협을 주지 못하여 삼국이 아닌 남북 대립이 어색하지 않다.
그 시대 평균 수명이 60이었다면 어떨까 싶다. 지금 코비드 19 환경에서 국가가 사망률을 주시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 모두가 주유, 곽가, 원소이다. 제작사가 개발을 중단하여 고인물인 내가 공융으로 원소, 조조를 줘 패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